[스크랩] 사극 천하 속에 빛나는 겁 없는 드라마, <얼렁뚱땅 흥신소>
KBS 월화드라마 <얼렁뚱땅 흥신소>
치열한 사극 지대에 겁 없이 선뜻 발을 내놓은 드라마가 있다. 드라마 자체보다 <연애시대>의 작가라는 프리미엄이 강하게 붙은 <얼렁뚱땅 흥신소>가 바로 그 것이다. 나 역시, 시작하기 전에는 이미 고정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그냥 드라마도 아닌 ‘사극’ 드라마들 사이에서 어떻게 전쟁을 치루 자는 것인지 의아할 따름이었으나 호기심에 본 첫 회에 앞으로 이 드라마를 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얼렁뚱땅 흥신소>는 박연선 작가의 <연애시대> 성공이 없었다면 쉽사리 나오지 못했을 시나리오였다. 박연선 작가가 이미 기사에도 밝힌 바 있듯이 독특한 구성과 캐릭터들이 버무려진 이 드라마는 번번이 퇴짜 맞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의 <연애시대>가 훈훈한 입소문과 함께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히트를 치자 이 드라마를 할 수 있었다고. 어떻게 생각하면 <연애시대>의 성공에 내가 다 고마울 지경이다.
* 우리보다도 1% 모자라 보이는 그들의 2차 성장기 이 드라마는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와 비슷한, 혹은 우리보다 더 엉뚱하고 없이 사는 주인공들이 ‘황금 사냥’이라는 허황된 도전을 하며 2차 성징을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그리는 드라마이다.
2008년 올림픽에 문대성이 또 금메달을 따 태권도 열풍이 불어 콩고물 좀 얻어먹길 바라는 태권도 사범 무열과 어렸을 적부터 느낀 인간의 추악한 면에 의해 인간을 경멸하는, 그러면서 귀신까지도 무서워하는 점쟁이 희경, 그리고 만화에서 얻은 잡동사니 지식들을 의외로 쏠쏠하게 써먹는 귀차니즘의 대왕 용수는 척 보기에도 우리 시대의 ‘루저Looser’다. 그러나 그들에겐 독특한 포인트가 하나씩 있기 마련이고 오히려 그들의 포인트 때문에 은근히 부럽기도 하다.
1회의 스토리는 대략 이렇다. 궁한 사정의 무열과 용수는 사랑하는 고양이를 잃어버린 부잣집 마나님의 의뢰를 받고 이를 도와주게 된다. 그러나 고양이와의 추격전은 하루 종일 헛걸음만 소비할 뿐이다. 한편 희경은 독서실에서 귀신 목소리가 들린다는 아이들의 소문에 짜증이 난 건물 주인의 의뢰를 받는다. 희경은 무열과 용수를 끌고 귀신 소리의 근원지인 지하실로 향하고 이들은 걸핏 해야 바람소리거나 의자가 삐걱대는 소리이겠거니 하며 주위를 둘러보다 무열과 용수가 의뢰받은 고양이를 발견한다. 그것뿐이랴? 이들에게 기다리던 행운(?)이 있었으니. 고양이의 새끼를 꺼내려다가 발견한 황금 세 개. 그리고... 금반지가 끼어져 있는 해골의 손가락.
사건은 여기서 시작된다. 여차저차해서 이 모든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게 된 셋은 황금 세 개로 자신들에게 올 일확천금의 기회는 잃게 되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묘령의 여인, 은재에게 삼백만원을 받고 시체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의 사적인 이야기들을 조사해주길 의뢰받는다.
* 드라마 때깔 하나 참 좋더라! 캐릭터들의 성격이 워낙 명확한데다 캐릭터를 책임지는 배우들과도 색이 잘 맞아서 굿 캐스팅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희경은 예지원의 독특함과 백퍼센트 맞아 떨어졌고 그녀의 적당한 오버 끼는 점점 사랑스러워 지고 있다. 또한 세상사 다 관심 없지만 필요할 때 만화책에서 본 지식들을 꺼내놓는, 은근히 순박해 보이는 용수 역시 류승수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그 뿐이랴? 미묘한 러브라인을 이어가는 듯한 무열과 은재 역시 마치 해당 배우를 염두하고 쓴 것처럼 딱 맞아 떨어지니, 배우들과 시나리오의 궁합이 최고인 듯 하다.
이 드라마는 독특한 캐릭터들이 독특한 소재를 통해 시종일관 치고 빠지며 치밀하게 한 회를 풀어가는 데, 다음 회가 보고 싶을 때쯤에 끝을 내면서 에필로그 격인 짤막한 에피소드를 하나씩 풀어놓는다. 1회에서는 마침내 찾게 된 고양이의 주인인 부잣집 마나님 김자옥(분)이 ‘흥신소는 사랑을 싣고’에서 고양이를 목청껏 지르고 2회에서는 두꺼비 탈과 옷을 입고 콜라를 쭉쭉 빨면서 인생의 쓴 맛을 보는 희경이 아이의 손가락질에 부끄러워한다. 이런 허를 찌른 듯한 에필로그는 드라마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
이제 다 지나간 여름의 끝자락을 부여잡은 듯한 <얼렁뚱땅 흥신소>를 보는 내내 유쾌하면서 가슴이 시큰하기도 많이 시큰했다. 결국 세상을 겉도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도 사건이 진행되면서 성장을 할 것이고 그러려면 그들의 속내에 감춰진 보이지 않는 비밀들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세상과 부딪히는 그들의 용기와 자신감이 부럽고 아름답다.
대작들 사이에서 용케도 첫 걸음마를 뗀 드라마이지만, 나에게는 품에 안아 보듬고 싶은 백점짜리 드라마이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진행 될지, 얼마만큼 지능적이면서도 가슴 한 구석 시큰한 구성이 펼쳐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이번에도 훈훈한 입소문을 타서 이런 사랑스러운 드라마가 많이 많이 나오는 포문을 열어주길. <얼렁뚱땅 흥신소>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