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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 스피치"에 대해.. 감동적인.. 조지 6세 이야기..

행복한하루보내기 2011. 3. 9. 16:53

 

나에게 영국 왕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다.

 

영국의 동전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옆 모습을 부조로 조각한 것인데..

흥미로운 점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나이드는 모습에 따라..

그 조각도 조금씩.. 나이들게 바꾼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공화국을 지향하는 나로써..

"왕"이란 존재는.. 그냥 흥미로운 존재지만..

실제 "왕"을 가진 국가들의  자긍심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왕"이 있는 나라에 가서는..

왜.. 당신 나라에는 "후진적인" "왕실"이라는 제도가 있냐는 식으로..

오바는 하지 말라고 한다.

 

예를 들어, 태국, 영국, 일본, 스웨덴..

- 사족으로.. 유럽에 "왕"들이 많이 존재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들이 산업혁명을 다른 대륙보다 빨리 치루면서..

다른 대륙들을 식민지로 삼고.. 그러면서 그 "부"를 토대로

"왕을 축출"하는 혁명의 역사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다양한 (자기네들이 이름붙인) 혁명이 있었으나..

"왕"을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한번 더.. 아마도.. 프랑스의 시민혁명을 옆에서 지켜본 다른 유럽의 "왕"들이

뭔가.. 혁명까지는 이어지지 않을 "대책"을 내놓았기 때문이 아닐까도 싶다.

 

여튼.. 우리나라 사람들도.. 왕실에 대한 향수는 꽤 있는 것 같다.

한번 더.. 아마도.. 우리의 역사에서 왕실이 사라진 것은..

공화정에 대한 국민의 바람에서가 아니라, 식민지 시대에 일본으로부터 왕실을 빼앗기면서..

그래서.. 왕실에 대한 향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도 싶다.

 

 

다시한번.. 여튼.. "킹스 스피치"기 아카데미를 석권하면서..

이 실화의 주인공인 조지 6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인.. 이분은.. 생각보다 훌륭하셨던 것 같다.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리뷰를 쓰는 것이 아니니.. 걍.. 이해해주시길..

이 글은 리뷰가 아닌.. "왕"에 대한.. 조지 6세에 대한 이야기다.

 

아.. 사실은.. MBC "서브라이즈"를 보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먼저, 조지 6세가 왕이 되는 과정은 세상에 많이 알려져 있다.

조지 6세의 형인 에드워드 8세는 미국의 이혼녀인 심슨부인을 택함으로써..

스스로 왕관을 벗어던졌다고 알려져 있다.

당연히..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맨틱한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그냥 에드워드 8세라 하면.. 나도 헷갈리는데..

흔히 "윈저공"으로 불리운다.. 아하.. ㅎㅎ

 

위스키 "윈저"는 한국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이 "윈저공"의 "윈저"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왕관을 버리고, 사랑을 택한 남자의 이름을 술 이름으로 하였다고 하니..

참 로맨틱하다..

 

그런데.. 과연.. 윈저공은.. 그렇게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으로 기억되어도 좋을까..

현재 영국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옳지 않다.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에드워드 8세가 왕좌를 박차고 나오자.. 후계자는 동생 조지 6세의 몫이 된다.

그런데, 이 사람이.. 말더듬이에.. 소심하고.. 각종 질환을 안고 있는.. 일명.. "종합병동"에

대중과의 만남을 기피하는.. 그러니까.. 왕이 될 그릇은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그저 운이 좋아서.. 그가 왕이 되었다고..??

아니다.. 정작 운이 좋았던 것은.. 윈저공이 왕좌를 버리는 그 순간..

조지 6세가 왕이 되기를 결심한 그 순간의.. 영국 국민이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에드워드 8세.. 윈저공은.. 놀기를 좋아하는.. 사교계의 황태자였으며..

심지어.. 히틀러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나치에 가까운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의.. 피앙새인.. 심슨 부인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러니.. 두사람에게는 로맨스였던.. 이 스캔들이..

2차 세계대전을 몸으로 겪었어야 했던 영국의 국민들 입장에서는..

국가의 명운을 살린.. 아주 다행인 "사건"이다.

 

게다가.. 심신이 병약했던 "조지 6세"는.. 아니 그의 가족들은..

궁이 나치로부터 폭격을 당하는 순간에.. 런던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국민들과 함께.. 전쟁을 온몸으로 부딪혔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공주였던.. 그 시절.. 어린 나이에.. 18살..

그것도 여자의 몸으로 전쟁에 직접 참가하였다는 이야기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대표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게해서.. 영국의 민주주의가 지켜졌던 것이다.

왕하나 잘못 판단하여.. 히틀러에게 나라를 바쳤다면..

지금의 영국은 어떤 모습일까..

영국민들이 가지는 자긍심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끝으로.. 조지 6세 국왕은 16년이라는 짧은 재임기간을 가졌고,

57세라는 짧은 생으로 마감했는데..

이유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왕이 된 그 책임감에..

소심한 그가.. 국민 앞에서 당당한 척 하느라..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다고 하네요..

왠지.. 가슴 찡~한 얘기 입니다.

 

국민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그는.. 그렇게 심적으로 고통받지 않았겠지요..

 

국민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그는.. 결코.. 왕이라는 그 자리가 힘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책임감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합니다.

 

왠지.. 또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나네요..

책임감과 국민에 대한 사랑은.. 목숨을 앗아가기도 합니다.

 

지금.. 힘들어야 할.. 그 누군가는..

대통령직이 한번도 힘들지 않았다고 고백 합니다.

정말.. 뻔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