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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과는 다른, 변주의 미학 -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행복한하루보내기 2009. 12. 17. 10:57

 

좋은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 그 프로그램을 만든 작가에게 질투가 난다. 아니, 진정한 부러움이다.

요즘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를 보면, 잘생기고 연기도 잘하는 고수 밖에 눈이 들어오지 않지만,

정작 부러운 것은 이경희 작가의 실력이다.

 

"클스"("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의 정식 애칭이라고 한다. 매우 유치하다고 생각했지만, 편리하기는 하다) 1회,2회는 그야말로 아련한 첫사랑의 그림자를 보여준 한편의 순정만화와 같은 신선함이 있었다. 

그래서, 사실 3회부터 재미없어질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런데, 3회부터 작가의 역량은 더욱 빛이 발했다.

1회와 2회에 시청자와 주인공들을 설레이게 했던 장면과 내용들이 반복되면서,

1회,2회의 주요장면들은 3회,4회,5회의 주요 복선이 되었다.

그리고, 3회의 내용이 5회에서 다시 반복되면서 다른 의미를 갖게 되는 화려한 변주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변주는 "신발"이다.

2회에서 지완(여주인공, 남지현분, 한예슬 아역)은 강진(남주인공, 김수현분, 고수 아역)이 자신은 맨발로 걸으면서 자신에게 건넨 "신발"을 통해, 좋아하는 마음을 확인받을 수 있었다.

그 내용이 3회에서는 허둥지둥 나온 지완(한예슬분)이 실내화와 어그부츠 한짝씩 잘못 신고 나온 것을 본 강진(고수분)이 어그부츠 한켤레를 사서 갖다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로써 지완과 강진은 옛 기억을 떠올리며 행복감에 젖는다. 물론, 오빠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지완은 강진에게 다가갈 수 없어 안타깝다.

 

 

이뿐이 아니다. "어머니"에 대한 것도 있다.

2회에서 강진의 사랑고백을 받아들일 수 없는 지완은 그의 엄마를 들먹이며 "남자나 꼬시는 다방 마담"의 아들하고는 가까이 할 수 없다고 한다. 강진에게 엄마는 자신이 지켜야할 가장 큰 짐이다.

이것이 3회에서는 "태준의 어머니는 어떤 분이냐"는 질문으로 자신의 아픔과 지완의 아픔을 건드린다. 지완은 다시한번 자신의 어리석음에 마음 아플 수밖에 없다.  

 

또, 3회에서 강진은 "선수가 사람 꼬시는데 애인 유무가 무슨 상관이냐"고 말한다. 이 역시 진심이라기 보다는 상황을 비꼬는 말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강진은 태준이 지완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5회에서 회장 딸 우정은 강진을 꼬시면서 이렇게 말한다. "여자친구 있어요? 뭐 상관없지만.." 이 역시 우정 자신이 선수라는 뜻이라기 보다 꼬시겠다는 의지를 나타낼 뿐이다.

 

반복은 같은 장면의 반복이다. 예를 들면, 막장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의 막장행동은 반복된다. 지겹도록.. 하지만, "클스"에서 반복은 변주다. 옛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동시에 상황을 다시한번 환기 시키며 또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시청자들에게는 몰입의 정도를 강화시킨다.

 

나는 구성이 탄탄한 드라마가 좋은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시청자들의 요청에 의해 결말이 바뀌 건 바뀌지 않던 간에 작가가 처음에 생각했던 흐름을 유지하는 것이 좋은 작가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클스"는 좋은 작가에 의해 쓰여진 드라마-이다. 작가의 역량은 갈피를 못잡고 왔다갔다 하는 "선덕여왕"보다 훨씬 낫다.

 

그래서, 그녀가 너무나 부럽다. 돈을 많이 벌고, 시청률이 높고, 소지섭, 비, 고수 등 당대 내로라 하는 남자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그의 권력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그의 촘촘한 실력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