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어린 시절의 기억은 평생을 좌우한다..

행복한하루보내기 2010. 9. 1. 11:12

 

내가 지금의 우리집을 평가하자면 가난하지는 않다.. ㅋㅋㅋ

하지만, 내가 5살 때를 기억하면.. (그때는 우리집이 가난한지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하면..그렇게 가난한데도 희망이 있고, 웃음이 있고, 배려가 있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어느정도였냐 하면..

10여가구가 동네 한가운데에 있는 공동화장실을 사용했고, 공동수돗가를 사용했으며..

잘 모르는 아저씨가 그 화장실에서 아래도리를 벗기도 했으며 (일명 바바리맨)..

한방에 5가족이 함께 살았다.

 

옆집은 가내 수공업 수준의 공장으로.. 젊은 오빠들이 기계를 만지면서 일을 했는데..

(낮에는 기계의 윙~소리가 들렸고, 들여다보면 검은 기름냄새, 쇳가루들이 있었다..)

그 오빠들이 나를 귀여워하여 극장에 데리고 가곤 했다. 

그중 "엄마없는 하늘아래"를 본 적이 있는데, "다섯살 아이가 그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면서,

그 오빠가 울 엄마한테 이 아이는 커서 글을 쓸 거라는 얘기도 했었단다. (그 오빠의 예지력이란.... ㅎㅎㅎ)

그렇게 힘든 상황에 옆집 꼬마를 챙겨주었던 그 젊은 청년들을 생각하면.. 조금 눈물이 나기까지 하다..

 

태풍이 올라온다고 한다.

그때 그 집이 한때(77년쯤) 물난리로 잠겨서 엄마 친구네서 하룻밤 자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저 평범한 수준의 그 집이.. 내 생각에는 굉장히 부자집이라 생각되었다.

아마도 내 평생에 그렇게 살 수는 없을 것이라.. 다섯살 꼬마 아이가 생각할 정도였다.

엄마는 당시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다.

 

그때를 생각하면,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가난해도 참으로 따뜻한 시기였다.

다만, 동네 입구에 있는 구멍가게 주인 할머니는 너무 무서워서 별일도 아닌 일에 큰소리로 혼나고는 했는데..

아마도 그 가게 할머니의 눈에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뭔가 훔쳐갈까.. 노심초사했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하면, 지금 아이들보다 그 가난한 아이들이 훨씬 순진하고 깨끗했는데도 말이다.

 

내가 성인이 되고.. 사람들이 종종 나를 "운동권"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단한번도 사회운동을 해본 적이 없으며.. 늘 하루하루 일하고 돈버는 것에 급급하다.

그래도, 내가 조금이라도 "운동권"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아마도 어린시절 가난했던 그 기억이 나를 언제나 조종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는 행복했지만...... 지금 나에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아마도 살아갈 용기를 잃어버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늘 불안불안하다.. 내가 다시 그렇게 가난해져서 그 힘든 시절을 다시 겪게 될까봐..

너무너무 불안하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가난해질 수 있는 상황은 매우 많이 있다.

나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구성원이 그럴 수 있다.

갑자기 해고가 될 수도 있고, 집안에 누가 아플 수도 있고...................

 

그래서, 나는 너무나 무서워서..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지금보다는 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범죄와 자살은.. 사회안전망을 조금만 더 보충함으로써 줄어들게 할 수 있다.

 

가난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가난의 무서움을 모른다.

특히, 가난한 집안의 여자들이 겪을 수 있는 무서움을 모른다.

 

하기사, 내 대학동기의 부인이  

"가난한 사람들을 우리가 왜 생각해야 하느냐.. 그 사람들은 평생 그렇게 살 것이고,

나는 평생 이렇게 살 것인데.. 서로 얼굴보고 살 일 없으니, 관심 꺼두라"고 조언했다.

아마도 그 여자는 우리집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모르나 보다.. ㅎㅎㅎ

그리고, 그 말이 자신을 얼마나 깎아 내리는 말인지도 모르나보다.. 

앞에서 싸우기 싫어, 그냥 우리 다시는 얼굴보지 말자하고.. 헤어졌다.. 

 

어제 MBC TV에서 국회의원을 5선이나 했으나..

"전두환에 반대한다"하여 재산을 몰수당한 옛 국회의원 부부가 나왔다.

 

지금은 컨테이너 박스에 가난하게 살고 있었는데..

부인이 "우리집에도 돈갖다주는 사람들 많았지요..(5선 국회의원이었단다..!!)

근데, 남편이 그래요.. 그 돈받아서 살면, 행복하겠느냐.. 자신은 돈받는 국회의원들이 이해가 안된다고요.. "

그야말로 꼿꼿한 선비의 모습이었다.

 

나는 죽을만큼 가난이 싫지만..(경험해봤으니까 더 싫다..) 그렇다고, 돈의 노예가 되는 삶 또한 싫다.

내가 가난한 것도 싫지만..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의 돈 빼앗아.. 다른 사람 가난하게 만들어놓고 부자로 사는 것이 어찌 행복하겠는가..

내가 가난해봐서 아는데.. 그 고통을 아는데.. 다른 사람들이 나 때문에 그 고통을 겪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다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내가 너무 기뻤던 이유는..

그가 다른 사람을 가난하게 하지 않았고.. 그 자신이 가난했던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보수적인 우리어머니도 늘 말씀하신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을 모르지.."

그래서, 울 어머니도.. 나의 꾸준한 설득에.. (빨갱이가 아니라는......) 노무현을 찍으셨고..

그가 죽었을 때, 마음 아파하셨다..

 

그가 살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의 성공이 가난한 사람들의 희망과 꿈이었음을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아프다.. ㅠㅠ